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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회고] 2020년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2020-12-31

올 여름 내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이란 생각을 적으면서 무언가를 ‘한다’는 기준은 결과의 열매를 쥐기 위한 단계로서가 아니라 완결성있는 한 과정 자체를 완성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를 하는 것도 특정 대회의 그 결승점이 달리기의 목표가 아니라 그저 달리기 위함이 달리기의 유일한 동기이듯이. 과정으로서의 ‘한다’는 것은 두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외적인 나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 하나, 반대로 나 자신과 관계를 맺는 것, 오롯이 내 안에 있는 어떤 존재만이 보고 듣고 이해해주는 내적인 자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 또 하나.

그간 생략되었던 과정 #

나라는 존재가 이 이미지로서의 나와 자아로서의 나가 서로 상호작용하여 만들어지는 결과적인 것이라면 작년까지의 시간을 돌이켜보았을 때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지는 어떤 이미지가 전부인, 어떤 의미로 내가 나 자신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 ‘생략’된 것은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한다. 일을 하고, 일을 위한 공부를 하고, 함께 작업하는 친구들 ftto와 재밌어보이는 프로젝트들을 구상하고, 또 어떤 의미의 자아실현을 위해 비영리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지내던 그런 작년까지의 삶을 살아오다 올 해 코로나 시국으로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도 생략되었던 나와 내가 관계를 맺는 그 과정을 스스로 주목할 수 있게 되었다. 혹은, 2019년 9월 요가를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쓴 작고 천천히 가는 단단한 삶을 사는 나에 대한 글 속 고민을 시작으로, 달리기를 하고 요가를 접하고 지금까지의 시간동안 만들어지는 외부세계 속 나의 이미지를 대면하면서 만들어진, 어떤 자연스러운 시간적 결과물일 수도 있겠다.

좋았던 책 - 사진을 잘 안찍어서 올릴만한 2020년의 순간이 없네

거짓된 욕구 버리기 #

2019년 연말 정도에 채식을 시도했던 동기는 내가 가진 거짓된 욕구(달리 표현하자면 중요하지 않은 욕구/욕망)를 덜어내는 것이었다. 내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따르는 수많은 나의 욕구 중에 정말 원하면서 절대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욕구가 있는 반면, 원하지만 따르지 않아도 되는, 어떤 의미로 거짓 욕구가 있지 않을까? 내가 이런 거짓 욕구들을 의식적으로 참아낸다면 정말 원하는 진짜 욕구를 달성하는 그 만족감을 더 깊고 단단하게 채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의 시작으로 육식에 대한 욕구를 참는 시간을 보냈고 그것이 2020년으로 이어져 2020년 가장 큰 목표 — 나의 거짓 욕구들을 찾아내는 것, 나를 유혹하는 거짓 욕구들을 버리고 진짜 욕구만 남겨놓는 것 — 가 생겼다. 그 작은 시도가 내 인생에 가장 큰 가치관이 될 줄은 몰랐다. 거짓된 욕구를 가려내 버리는 것.

2020년에는 유망한 스타트업에서 퇴사를 하고 작은 스타트업 두군데에서 일을 시작했다. 2019년 ‘한다’는 의미로 시도했던 달리기와 요가를 2020년에도 이어서 시도했고 달리기를 하고 있고 요가는 여전히 시도하고 있다. 완결성있는 과정을 찾기 위해 나만의 일상적인 루틴을 찾고있고 어쩌면 잘 찾았는 지도 모르겠다. 심리적인 욕구 뿐만 아니라 거짓된 욕구를 버리는 것을 물리적인 것으로 자연스럽게 확장을 하면서 단순하게 사는 것이란 의미를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꼭 가져야 할, 갖고 싶은 물건들을 남기고 버리고, 되팔고 그리고 꼭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있다. 단순히 사고/사지말고의 문제를 너머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은 내 인지 범위 안에 두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 내가 가진 물건들이 내 인지 밖에서 집 어딘가 버려져있지 않아야 한다. 재활용/친환경 소재로 만든 제품과 그 브랜드만 소비한다. 소유의 기준도 ‘기본’을 중요시한다.

좋아하는 브랜드 organic basics의 탄소저감용 웹사이트

나의 욕구와 대면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미니멀리즘이란 나를 들여다 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줄이는 것은 그에 대한 결과적인 모습 중 하나일 뿐이고 그 기저에는 내 인생에서 충족시켜야 하는 욕구의 가짓 수를 줄이는 것이다. 내게 진짜 욕구는 뭐지? 거짓된 욕구를 버리고 나면 남는 진짜 욕구는 뭐지? 그 욕구를 버리고 버리고 남기다 보면, 무의식 중에 그냥 하면 좋으니까 먹으면 맛있으니까 하던 것들을 버리고 남기다 보면, 진짜 욕구가 남는다. 그렇게 걸러내고 나면 비로소 미니멀리즘이란 삶이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앎의 단계를 지나 #

나는 무엇을 ‘하는’사람일까라는 고민으로 쓴 첫 글에서처럼 무엇을 하는게 좋다는 것을 머리와 마음으로 알고 시도하는 긴 시간과, 그 시도하는 시간 속에서 내 것이 아닌 채 버려지는 것과 앎의 단계를 지나서 어떤 의미로든 나의 것이 되는 체득/체화의 단계, 비로소 그것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 흙이 쌓이고 비가오고 무겁고 단단한 것은 남고 가벼운 것은 쓸려내려가고, 다시 흙이 쌓이고 비가오고 남고 쓸려가고. 이렇게 단단한 땅이 만들어지듯 여러 시간 동안에는 어설프게 시도하고 놓치고 그렇게 나의 것이 아닌 듯 흘려보내지만 나의 어딘가에 무겁고 단단한 것은 남아 그 때는 못했지만 지금 이것을 ‘하고’있는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2020년은 이렇듯 내가 나를 마주하고 잘 알아왔던 해였다. 내가 결과로서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완성을 좇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2020년은 가장 중요한 기점이 되는 해로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2020년의 나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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