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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회고] 1. 해커와 화가.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가?

2022-02-19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가?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지만 모든 창작이 예술은 아니다. 나는 언제나 해소할 수 없었던, 해소되지 않았던 예술에 대한 욕망이 가득했고(하고) 그 욕망은 예술의 소비가 아니라 창작과 표현을 향한 욕구였다.

나는 읽을 때 묶여있다가 쓸 때 해방된다. - 쓰는 기분, 박연준

해소할 수 없었던, 아니 없다고 여겼던 이유는 예술적 표현을 위한 재능. 그저 그런 핑계 위에 예술의 반대편(이라 생각했던), 합리와 논리의 영역에서 창작이 아닌 '요구사항에 대한 구현'을 업으로 삼았고, 사그라들지 않는 그 욕망은 내가 갖지 못한 모습을 가진 모든 창작자들을 선망하고 동경하는 마음으로 가벼이 소비하는데 그쳤다.

19년 회고에서부터 적었듯, 그리고선 나는 나를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 자아의 부재 상태에서 외부에서 답을 찾으려던 모든 시간을 뒤로 하고 진짜 나를 찾기 위해 천천히 그리고 작게 존재함으로써 나 스스로를 깊게 들여다보고자 했다. 그 시간 이후로 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이드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나를 작고 천천히 깊게 만들어 주는 것들로, 어떤 의미에서 명상적인 삶의 과정의 완성을 위한 것에 내 온 마음과 시간을 다했다. 달리기를 하고 넘치는 정보에 눈을 감고 온라인을 떠나 오프라인에 머물고 작은 것들을 천천히 살피고 요가를 수련했다. 요가는 내 호흡을 천천히 깊게 만들어 주는 가장 큰 그 무엇이었다. 그리고 22년, 나를 향한 여행의 경유지로 파운틴헤드,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그리고 해커와 화가에 도달했다.

파운틴헤드의 주인공 로크는 자신의 건축물이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무시당하고 비웃음거리가 되면서도 그의 '고결함'을 잃지 않는다. 그가 가진 동기는 자신의 진실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위대한 창조자의 목표이고 삶이기 때문에.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의 피어시그는 모터사이클 관리라는 형이하학적인 소재로 형이하상적인 선에 대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선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해커와 화가를 쓴 폴 그레이엄은 해킹의 본질적 의미는 구현의 수단이 아닌 예술적 창조의 행위에 가깝다 이야기한다. 프로그래밍 언어는 볼펜이 아닌 연필이며 고장남을 두려워하지 않고, 구현에 갇혀있지 않고 맘껏 쓰고 지움의 반복으로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함을 이야기한다.

"자넨 사회가 줄 수 있는 건 다 갖게 되겠지. 돈, 명성, 명예.... 그리고 난, 난 다른 사람은 줄 수 없는 것, 오직 나 자신만이 줄 수 있는 걸 갖겠지. 코틀랜드를 짓는 것." "하워드, 자네가 나보다 많은 걸 갖는 군" - 파운틴헤드, 에인 랜드

그동안의 명상적인 삶을 만들어내며 많은 영감이 된 소설가 하루키의 삶은, 단지 꾸준히 달리기를 하는 삶이 아니었다. 달리기라는 상징과 함께 정제된 소비들(위스키, 재즈, 여행...)에서 쌓인 깊은 에너지를 예술로서 분출해내는 것, 그 끝에 있는 예술이 나를 매료시킨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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